Our Story
“Be Strong and Courageous”
모슈아 앱은 생존을 넘어 자아의 신화를 향해 항해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나침반이자 별입니다.
自由(자유)는 ‘스스로 말미암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곧, ‘소유’한다는 의미입니다. 주인의 삶이란 나의 신체를 온전히 소유하고, 재산을 소유하며, 생각을 소유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매스미디어는 소유를 악(惡)으로 세뇌해왔습니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를 빼앗아 나누자는 악마의 사상이 이 땅을 뒤덮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물론적 굴레를 정신에 걸고 서로를 고발하고 끌어내리는 곳이 바로 출산율 세계 꼴찌, 자살률 세계 1등의 ‘그 나라’ 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노예신세를 벗어날 사명을 지고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기계발은 육신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욕망(성욕, 물욕)을 해소하기 위한 심리조종기법을 배우거나, 아무런 영적 성장없이 돈만 벌겠다는 것은 자기계발이 아닙니다. 진짜 자기계발은 영(靈, Soul)을 따르는 일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영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표(靈)를 따라 자아의 신화를 쓰는 것이 자기계발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Romans 8:5-6
그렇다면 ‘노예신세’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해리포터의 ‘도비’ 캐릭터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집노비 도비’는 소유권이 없습니다. 하지만 주인으로부터 물건을 선물받아 소유하게 되는 순간 그는 자유가 됩니다. 영국의 구전 설화에서 유래한 이 ‘집노비 도비’이야기는 ‘소유권’이 곧 ‘자유’라는 인류 무의식의 원형을 담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요컨대, 소유하지 못하는 자가 노예이고, 소유할 수 있는자가 주인입니다. 당신은 노예입니까 주인입니까? 당신은 신체, 자산, 사상에 대하여 스스로 말미암을 소유권이 있나요? 최근 자신의 신체에 강제로 어떠한 조치를 취하여야만 하지는 않았나요? 소유한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가 있나요? 어떠한 사회적 주제에 대하여 타인과 다르게 생각할 자유가 있나요? 세가지 모두에 대한 답이 NO라면, 당신은 출애굽기 1장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집트 사람들은 그들을 노예로 삼아 그들을 다스릴 감독들을 세우고 강제 노동으로 그들을 괴롭혔으며 이스라엘 자손들은 파라오를 위하여 국고성인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였다.”
Exodus 1:1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비참한 노예신세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으로 가도록 모세와 여호수아를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이러한 과정의 기록인 [출애굽기]와 [여호수아]는 역사적 사실일 뿐만아니라 ‘자아의 신화’를 쓰고자하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비유적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모세의 이름은 히브리어 ‘마샤(מָשָׁה, Mashah)’에서 유래합니다. 이는 ‘건져내다’라는 뜻입니다. 즉, 노예의 신세에서 ‘견져내어’ 지려면 성경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가르침(십계명)을 따라야함을 의미합니다. 한편 여호수아는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I AM THAT I AM’의 결과를 의미합니다. 실제로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에 입성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지표삼아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광야로 자아의 신화를 위해 떠나는 것을 비유하고, ‘여호수아’는 실제로 약속의 땅에 입성하는 성취와 현실화를 의미합니다. 즉, 모세와 여호수아의 여정은 자아의 신화를 쓰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써주신 역사임과 동시에 비유적으로 풀어낸 신이 내려주신 자기계발을 의미합니다.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Exodus 3:8
“너(모세)는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어라.”
Exodus 3:10
하나님의 비유적 가르침이라고 생각하고 위 구절을 곱씹어보면, 하나님께서는 노예신세(이집트)에서 벗어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즉, ‘자유’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인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이러한 계시를 받고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을 시작합니다. 안전한 노예의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광야로 내딛는 것이 자아의 신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래와 같이 가장 중요한 제 1의 원칙을 제시하여 주셨습니다. 자아의 신화를 쓰는 모든 사람이 붙잡아야하는 절대적 코드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I AM WHO I AM(나는 곧 나다).'”
Exodus 3:14
‘I AM THAT I AM(אֶהְיֶה אֲשֶׁר אֶהְיֶה)’은 직역하자면 ’나는 곧 나이다’이며,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나는 곧 나 스스로 말미암는 자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예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표로 삼아야할 최고의 가치를 ‘스스로 말미암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일컫는 말인 ‘야훼(YHWH, יהוה)’의 의미 그 자체이이도 합니다. 내가 상상하는 것(I AM)을 실제 현실로(I AM) 전환(THAT)할 수 있는 존재, 즉 ‘창조’를 본질로 하는 것이 ‘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노예신세에서 벗어나는 것은 하나님게서 우리(모세)에게 주신 사명이며, 그것을 위한 가장 중요한 지표가 “I AM THAT I AM”이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말미암는 것’은 자유를 향한 자아의 신화의 필수 불가결의 원칙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십계명의 첫번째가 바로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Exodus 20:3
이것의 진짜 의미는, 자아의 신화를 쓰는 사람이라면 ‘I AM THAT I AM’이외에는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3년간 고난을 겪은 것이 제게는 유익이었습니다. 이에 고백합니다. 타인에게서 말미암거나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도움에 의지할때마다 저는 무너졌습니다. 죽고 싶어서 빌딩 옥상에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문이 잠겨있어 죽지 못했습니다. 그날 이후 하나님은 계속해서 제가 119라는 숫자를 보게 하셨습니다. 카페에 가면 대기번호가 119, 시계를 보면 11시 9분, 올린 게시글의 좋아요 수가 119, 자살에 실패하고 계속 이러한 현상이 약 1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으로인해 시편 119:119를 읽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을 찌꺼기처럼 버리시므로 내가 주의 법을 사랑합니다.”
Psalms 119:119
정말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저에대해 거짓 증언하던 악인들이 찌꺼기(dross)처럼 차례차례 유기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Dross’은 금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찌꺼기 입니다. 뜨거운 용광로에서 인고의 시간을 거치면 악인은 찌꺼기처럼 버림받고 하나님의 자녀는 ‘금’으로 거듭납니다. 악인이 지금 당장 성공하는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이라는 용광로 앞에서 그 정체가 필연적으로 드러납니다. 저는 시편 119장을 매일 읽으며, 인고의 시간을 견뎠습니다. 저는 인간의 도움을 구하는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표삼아 스스로 말미암았고, 그때마다 저는 치유되었습니다. 고난으로 말미암아 이제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I AM(상상)’을 ‘I AM(현실)’에 창조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이땅에 온 사명입니다. ‘I AM THAT I AM’을 따르는 것이 곧 여호와를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아무도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네가 살아 있는 한 아무도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모세와 함께 하였던 것처럼 너와도 항상 함께하여 너를 떠나지 않고 너를 버리지 않겠다.”
Joshua 1:5
‘아집, 교만, 나태’등의 육신의 것이 아닌 내면의 신성에서 ‘스스로 말미암는 사람’은 아무도 당해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하였던 것 처럼 항상 함께하십니다. 한편, 스스로 말미암지 못하도록, 미디어와 세상이 세운 우상을 섬기도록 우리에게 족쇄를 채울때 사용하는 것이 바로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부재에서 생겨나는 감정입니다.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총 365번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1년 365일 매일 이것을 우리가 곱씹기를 원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세의 사명을 이어받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마음을 굳게 먹고 용기를 가지라고 하지 않았느냐! 너는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말아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겠다.”
Joshua 1:9
두려움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닮은 속성’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두려워하는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망가지게 됩니다. 노예 신세에서 벗어나(출애굽), 자아의 신화를 완성(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굳게먹고 용기를 가져야’합니다. 이것은 약속의 땅(=여러분의 꿈)에 도달하기 원한다면 두려움이 부재한 상태가 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Be Strong and Courageous’는 ‘I AM THAT I AM’을 실천하기 위한 마음가짐입니다. 이에 저는 모슈아 앱의 핵심 메시지를 이것으로 정했습니다. 우리는 강하고 담대하게 노예의 삶에서 광야로, 광야에서 가나안(상상의 현실화)으로 입성할 것입니다.
지난날 이 땅을 뒤덮은 ‘자기계발’은 사실상 ‘자기착취’, ‘심리조종’, ‘물질숭배’와 동의어였습니다. 이러한 육신의 것으로는 절대 ‘생명’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진짜의 등장으로 가짜들이 자신을 드러낸 지난 3년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짊어진 종의 멍에는 이제 더 이상 물리적이지 않습니다. 수십년의 정신적 작전(psyop)으로 우리의 정신에 멍에가 걸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영(靈, Soul)에 족쇄를 채울수 있다면 그를 노예로 만드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하지만 지난날 우리가 노예생활을 하였다고 해서 그것이 헛된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떠날 당시 그 동안의 착취에 대하여 보상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자아의 신화를 쓰기 전의 평범한 직업을 저주하거나 등한시해서는 안됩니다. 이스라엘민족이 그들이 노예 취급을 당하던 곳에서 정당한 보상을 강탈하듯 받아내어 풍족한 상태에서 광야로 떠났듯, 지금의 일시적 평범한 직업은 자아의 신화의 밑거름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하여 호감을 갖게 하셔서 그들이 요구한 대로 주게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 사람들의 물건을 거의 빼앗다시피 하였다.”
Exodus 12:36
모세처럼 정당한 보상을 이 땅에서 얻어내어 광야로나가 여호수아의 사명을 완수하는 모든 과정의 나침반이 되겠습니다. 우리의 여정에는 홍해와 요단강이 갈라지고 해와 달이 멈추는 기적이 함께하며, 6일동안 여리고 성을 돌던 이스라엘 민족이 7일째에 소리(선포)를 지르니 성이 함락되었듯 ‘I AM THAT I AM’에 대한 인내와 믿음의 선포로 난공불락의 요새가 함락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우상도 섬기지 않으며, 오로지 신의 진실된 음성만을 따릅니다. 자아의 신화를 쓰는 우리들은 사이비들의 보여주기식 집회와 회당에 ‘안나가’며 골방에 들어가 은밀한 중에 우리에게 거해계신 하나님을 지표삼아 노예신세를 벗어나 황금을 챙길 것이며, 광야를 헤쳐나갈 것이며, ‘가나안’땅에 도달할 것입니다. ‘Moshua’는 Moses와 Yehoshua의 합성어입니다. 모슈아앱은 자아의 신화를 쓰는 사람들의 여정을 함께하는 종합 자기계발 어플리케이션입니다. 우리 내면에 거하신 하나님을 찾는 여정을 함께하는 나침반이자 별이되겠습니다.
“그들은 그 별을 보자 너무나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Matthew 2:10
2026.02.04
부산의 한 오피스에서 수영강의 야경을 바라보며 노트북을 직접 두드려 적음
개발자 박찬우 드림